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읽고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한줄 요약 : 이 소설을 읽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
내용이 상당히 난잡하다고 느낄수 있다.
나도 그렇게 느끼지만, 이 책의 내용은 도저히 명료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너무나 어려운 책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거나 사라졌는지, 수없이 나오는 성적 행위, 주인공의 사고방식 까지
군대때 선임들의 추천으로 처음 읽고, 5년이 지난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그때 왜 추천했는지를 알거 같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꽤나 몽환의 느낌을 줬던 책이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크게 두가지라고 생각한다.
- 상실속에서 나아감
그럼에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고 싶은건 상실속에서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와타나베는 주변에서 수많은 사라짐을 목도했다.
- 고등학교 때 가장 절친 기즈키
- 누구보다 가까워졌지만 결국 떠나버린 나오코
- 갑자기 방학이 지나고 사라진 룸메이트 돌격대
- 방탕한 선배의 곁에 있다가, 멀어졌지만 결국 떠나버린 하쓰미
하지만, 와타나베만 상실을 겪은것은 아니다.
- 부모님을 잃게된 미도리 (아내를 먼저 잃어버린 미도리의 아버지)
미도리는 자기 스스로는 너무 힘들고, 싫다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강인하게 자신의 삶을 나아간다.
급에 맞지 않는 고등학교, 아프신 부모님, 그로 인해 간병과 하고 싶지 않은 서점 업무라던지
- 나오코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고, 함께 지낸 룸메이트 레이코 선생님
나오코가 떠나며, 더이상 혼자 살아갈 수 없는걸 깨닫고 세상에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상실속에서도 살아가야만 한다.
- 상실과 혼란스러움
사실 ‘이 책에서 상실되지 않는게 있을까?’ 싶다. 너무 많은 상실이 적혀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혼란도 너무 잘 드러나있다.
- 고등학교 가장 절친한 기즈키의 자살로 인해, 어느 순간 들어오게 된 죽음이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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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 여전히, 나오코를 위한 사랑은 마음속 한없이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이미 미도리를 좋아하게 된 자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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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에 대해선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서 걷고, 호흡하고, 고동치고 있는 것입니다.
- 누구보다 자신에게 냉혹하고, 신념이 있는 나가사와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온 하쓰미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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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쓰미의 죽음으로 뭔가가 사라져버렸고, 그것은 견딜 수 없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상실과 혼란으로 고통스러워한 나오코는 자살을 하는날 아침, 누구보다 건강해 보이고 편해졌다.
하지만, 자살을 하기 바로 직전 레이코와 얘기하며 자신의 마음을 얘기한다.
1
2
3
그건 한 번 왔다 가버린 거에요. 그런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
이젠 누구로부터도 어지럽혀지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에요.
살면서 수많은 상실이 다가오고, 우리는 혼란스러워진다.
꼭 사람에 대한 상실이 아니더라도, 기회에 대한 상실, 시간에 대한 상실, 사랑에 대한 상실등 펼쳐져있다.
주인공은 마지막 선택을 한 나오코처럼 명쾌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소설은 끝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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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도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인상 깊은 구절
네가 정말로 좋아, 미도리. 봄날의 곰만큼 좋아. - 331p
온 세계 정글 속의 호랑이가 모두 녹아 버터가 되어버릴 만큼 좋아. - 375p
사실 이 구절들을 읽고 매우 혼란스러웠다.
나의 기준으로는 이런 말은 ‘정말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미도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나오코를 떠나보낼 준비를 할 거라고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나오코만 생각하는 와타나베를 보며 미도리는 2~3개월 가량 와타나베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다시한번, 서로를 만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와타나베는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나오코가 떠나고 와타나베는 사실상 3주 넘게 연락도 없고 정처없이 방황을 한다.
어쩌면 이런 로맨틱한 허무맹랑한 사랑 고백이 ‘미도리를 사랑한다는 사실’ 을 애써 부정하려고 한건 아닐까? 싶다.
자신을 동정하지 마. 자신을 동정하는 건 저속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악착같이,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요?
노력이란 좀 더 주체적이고 목적을 가지고 하는 거야. - 292p
갑자기 내용이 자기계발서적인 내용이 나와서 당황했다. 요새, 스스로에게도 되게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회사원으로서의 압박, 개발자로서의 성공, 주변 사람들의 시선’ 그런 것들이 압박으로 다가올 때가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나 커리어는 되게 멋있게 다가온다. ‘나는 도대체 뭘 하는거지…’ 와 같은 자괴감과 함께
근데, 이 소설에서 나오는 나가사와의 삶이 행복하냐? 라는 말에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저 몇명과 잤는지 세기 위해 하는듯한 쾌락행위, 목적만을 위해 의미없이 하는 어학
여자친구를 사랑을 하지만 자기 목적이 더 우선순위가 높으므로 주저하지 않고 떠나는 해외근무
등 행복이라는 용어와 연관이 되는건 단 하나도 없다.
마무리
이 책은 정말 뭐랄까.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
나에겐, 그래서 시대상, 전체주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등등
그런건 전혀 와닿지 않고 참을수 없는 아련함과 혼란스러움만이 다가왔다.
오히려, 성행위 묘사나 음담패설이 많이 들어가 있는것도 내용이 너무 고통스럽게 타들어가지 않게 환기시켜주는거 아닐까.
내가 놓치고 지나간 부분은 이 책에서 얼마나 많이 있을까.
아니면, 이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해석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책을 적을때의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지금 완벽히 기억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한다.
(1987년 이 책이 출판된걸로 안다.)
책의 위대함은 예전에 읽고 상실된 그 기억에 대한 아련한 환기를 해준다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다음에 읽을때는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 지 책 내용처럼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꼭 한번 정도는 읽어보면 좋겠다.
추가로, 영화가 있는데 영화는 절대 보지말자. 그냥 소설을 컷신으로 잘게잘게 이어붙인 수준이다.
